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카지노인문학

“대박”드라마로 보는 한국 겜블링 역사 -에필로그-

by micaPARK 2016. 5. 24.

“대박”드라마로 보는 한국 겜블링 역사 -에필로그-


나는 역사를 전공한 카지노 딜러이다. 나의 대학 전공과 업의 전공이 맞지 않아 고생했던 적은 한번도 없다. 다만 전공이 역사다보니 한국의 카지노 더 나아가 겜블링의 역사에대해 연구해 보고 싶었다.  마침 "대박"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벌써 17회가 방영 중이다. 

도성의 옥좌를 가지려는 자 이인좌와 

세상이치는 결국 백성이 이긴다는 자 대길이의 숨막히는 대결이 기대된다. 


겜블을 번역하면 도박이라고 한다.

우리 역사에서 도박의 동의어로 노름이라고 표현하였다.

우리의 역사 속의 겜블을 알아보고자 한다.

마침 겜블을 주제로한 사극 “대박”이 나와서 한결 쉽게 알아보자^^

도박과 동의어인 노름은 놀이의 “놀음”에서 파생된 것만봐도 우리 민족에게 도박은 늘 주변에 있었다.

1902년 주한 이탈리아 대사 까를로 로제티는 한국인의 내기 풍습을 책으로 썼다.

“꼬레아 고레아니” 중

한국인은 선천적인 도박사이기 때문에 누구를 응원해야 하는지 잘 안다

한국인의 도박에 대한 열정은 아마도 천부적으로 간직한 특징인 듯 싶다.

심지어 생필품조차도 직접 구입하기 보다도 내기로 구하려 들 정도이니 말이다.

그리고 1984년 헤세 바르텍이라는 오스트리아 여행가는 조선인의 노름에 빠진 모습을 잘 묘사하였다.

“조선 1894년 여름” 중

조선인들은 이웃해 있는 만주인이나 중국인에 비해 훨씬 더 도박을 즐기는 민족이라고 부르고 싶다.

조선인들은 열정적인 노름꾼이며, 많은 사람들이 노름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.

궁궐의 경비실에서 관청의 사무실, 사택이나 사원, 거칠 것 없는 시골길에서 조차 가는 곳마다 조선인들은 담배를 피우며 노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.

주로 투전, 장기, 골패를 가지고 도박을 하지만 연날리기, 석전을 가지고도 한다.

조선에서 도박이 발달한 가장 큰 이유는 중국과 일본에서처럼 극장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에서다.

또한 조선이 겜블이 성행한 다른 이유는 조선시대 이앙법 등으로 기술이 발달이다.

기술이 발전하면서 생산이 증대되고 화폐경제가 도래했던 이 시기에 일만했던 사람들은 여가시간이 생겼다. 

하지만 마땅히 즐길거리가 없었던 사람들은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을 겜블에 열중하였고, 특히 조선후기에 겜블이 확산되었다고 볼수 있다(유승훈,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).

외국인들이 본 조선시대의 겜블은 상당히 이색적이였다. 그리고 한국인의 겜블 실력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실정이다. 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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